본문 바로가기
역사학

전쟁의 모든 역사 그리고 전쟁의 기원 그리고 언어 능력 및 도구의 발전

by 역사 전문가 2024. 2. 25.

헤로도토스가 들려주는 소 밀티아데스의 극적인 이야기 중 
"지금 우리가 싸우지 않을 경우 내분이 일어나 심각하게 민심이 동요하며 아테네인들의 마음이 페르시아인들에게 부역하려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몇몇 아테나이인 듯이 이런 불건전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전에 전쟁을 시작한다면, 신께서 공평하실 경우 우리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오. "

 

전쟁의 모든 역사 그리고 전쟁의 기원 그리고 언어 능력 및 도구의 발전
전쟁의 모든 역사 그리고 전쟁의 기원



전쟁의 기원

인류는 먹이를 놓고 다른 동물과 경쟁하는 한편,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다. 
또 은신처를 놓고도 싸워야 했다. 그러니까 전쟁은, 아담의 죄가 '인류의 타락'을 가져왔다는 유대 기독교 관념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한 평자들이 1960년대에 열렬히 주장한 대로 단순히 사회가 인류를 타락하게 만든 결과로 출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설명대로라면 전쟁은 우리 생물종의 역사가 90퍼센트가량 지난 이후에야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인간 사회의 불가결한 구성 요소이다. 

실제로 아마존과 뉴기니 등지에 있는 현대 수렵채집 사회의 패턴은, 수렵채집민과 정착민을 막론한 인간 집단 사이의 분쟁에서 과거에 좀 더 흔했던 관습을 반영하고 있다. 

사냥 영역 확보를 위해서이든, 특히 배우자감을 얻고 /얻거나 부족에 통합하기 위해서든, 노예 포획을 위해서든,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든 다른 인간 집단과의 싸움은 다른 동물을 상대로 한 싸움과의 연장 선상에연장선에 있었다. 
실제로 독일에서 마지막 곰이 사살된 것은 1797년이었다. 
인류사 내내 지속됐고 오늘날까지도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생물과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진행 중인 싸움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승리를 거두어온 것은, 인간의 타고난 신체적, 정신적 특성뿐만 아니라 이런 특성을 활용해 기회를 증진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많은 동물처럼 열을 발산하기 위해 멈출 필요가 없이 땀을 흘리면서 동시에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신체적 핵심 요인이었다. 이 능력은 추격과 도주에 모두 이점으로 작용했다. 


언어를 통한 소통 능력

사냥과 방어를 위한 집단 협력을 촉진하려면 언어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룹으로 함께 일하는 능력은 포식자를 물리치고 마스토돈이나 매머드와 같은 강력한 먹이를 쫓는 데 매우 중요했다. 또한 이러한 집단적 노력은 동료 인간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었다.

혁신의 보급과 향상을 촉진하는 데 있어 언어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이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지속되며 인간을 다른 전투 생물과 구별하는 진화 과정의 기본 요소였다.

지식의 습득은 주변 환경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나 진화의 본능적인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인간이 변화의 촉매제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가능성을 탐구하며 결과를 평가하는 의도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에서 사회 구조의 존재와 언어의 발달은 인간을 다른 모든 종과 차별화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도구의 발전 

돌, 나무, 뼈, 가죽, 뿔, 불, 진흙 등의 특성이 무기와 피신처를 만들고 강화하는데 활용됐다. 특히 부싯돌은 주로 도끼날을 만드는데 요긴하여 부싯돌 다루는 기술이 발달했다.
특히 나무나 뼈로 된 자루에 송곳과 날을 부착한 결합식 도구가 중요했고, 창과 화살에 독촉을 매달아 무게 대비 관통력을 높였다. 

투척 무기는 발톱, 뿔, 엄니, 가죽 등 무기와 보호구를 선천적으로 갖추어 인간보다 전투에 더 강한 특성을 지닌 동물을 무찌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동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려면 무기가 필요하였다. 매머드는 게다가 큰 찌르는 도구 같은 가죽을 뚫을 수 있어서 고기를 잘라 먹거나, 동물을 죽일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백질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생선 및 고기, 단백질은 과일이나 생채소처럼 오랜 처리 과정을 지나지 않고도 소화가 되었다. 
동물은 유럽의 검치호와 대형 사슴과 털코뿔소, 중앙아메리카의 마스토돈과 대형 아르마딜로 같은 모든 거대동물이 멸종하게 됐다. 여기에는 서식지의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인간에게 이러한 상황을 이용할 능력이 있었던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인간은 사냥 기술이 있었고, 기원전 1만년 경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에는 빙하가 없어지며 펼쳐진 예측 불가능한 환경과 가능성에 다른 동물보다도 훨씬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전쟁의 서막 

인구가 증가하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쟁의 경쟁자인 육식동물을 인간 정착지로부터 먼 주변부로 밀어내면서 다른 인간과의 싸움이 더 중요해졌다. 
이 싸움이 어느 정도였고, 언제 발생하였으며 어떻게 설명할지는 모두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것을 전쟁이라고 해야 할지도 논란거리이다. 

무기 사용이 곧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폭력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유골도 전쟁이 아니라 살인이나 해묵은 반목의 결과였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남티롤에서 발견된 기원전 3000년경의 아이스맨, 외치는 구리 도끼와 부싯돌 나이프 그리고 부싯돌 창끝이 달린 화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비슷한 무기로 누군가를 공격한 뒤 살해됐거나 최소한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어느 계곡에서는 몽둥이 같은 둔기에 의해 외상을 입은 머리뼈와 화살촉이 박힌 팔뼈 등 유골 외에도 청동 검, 부싯돌, 청동 화살촉, 곤봉, 창끝 등의 무기가 발견되었다. 
초기 조사에서는 대략 트로이가 멸망한 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1200년경 독일 남부에서 북부를 침략하여 전투가 발발했으며, 약 4000명의 전사가 참여해 그중 1400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 사망자 사이에 친족 관계가 거의 확인되지 않아 이들이 이주민 집단일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그래서 이제는전투가 아니라 무역상 호위대의 매복 공격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타 유적에 대해서도 이처럼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전승, 문헌, 이미지에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