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시대
흔히 '해적' 하면 우리는 무시무시한 해골 깃발과 칼을 휘두르는 애꾸눈의 도적을 상상한다. 그러나 16세기 영국 사회에서 해적은 존경하는 영웅이자 위대한 용사였으며 부러워 마지않는 부자였다. 뛰 어난 해적들은 여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되거나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해적 천 하의 시기였던 것이다.
해적으로 군사력 확충 역사
2007년 6월에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캐리비안의 해적> 3편이 전 세 계적으로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9억 달러에 달하 는 티켓 매출을 거두었다. 영화에서 조니 뎁이 분장한 해적 선장 잭 스패로 우의 길게 땋은 머리와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해적 열풍을 일으켰다. 해적은 서양인들에게 낭만적인 정서적 이미지가 있다. 예컨대 월드컵 대회에서 영국이나 덴마크, 노르웨이 등 국가들의 경기가 벌어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해적 분장을 한 축구팬들이 등장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 인바이런Byron의 서사시 <해적>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영혼의 주인이어라. 이 세상은 우리의 •제국이며 권력은 끝이 없어라. 우리의 깃발과 왕홀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이가 없으니 하루하루가 즐거움과 기쁨이라............."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해적의 이미지는 엘리자베스여왕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 시기: 16세기~17세기
- 인물 : 존 호킨스 John Hawkins, 프랜시스 드레이크 Francis Drake
당시 신대륙으로 향하는 바닷길은 엘리자베스 1세는 강력한 왕권으로 국내의 정국을 안정시킨 후 재정을 황금으로 유럽에서 가장 힘세고 돈 많은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었 다. 당시 전 세계 은의 3분의 1을 스페인이 보유했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충 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국왕은 강력한 군주제를 기반으로 막 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식민지에서 거둬들이는 재물로 왕실 국고를 채웠다.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하고, 군자금은 얼마나 많이 동원하는지 등의 국가 중 대사는 오로지 국왕 혼자서 결정했다. 반면에 영국의 상황은 크게 달랐다. 신대륙이라는 '보물창고'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국왕은 매사에 의회의 견제 를 받아야 했으며 세금도 마음대로 징수하지 못했다. 식민지를 개척하려 면 강력한 해군이 필요했지만 해군을 확충할 돈마저 없었다. 엘리자베스 1 세는 자국이 스페인과 식민지 쟁탈을 벌일 만한 해상 전투력이 없다는 사 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회 전술을 선택했다. 바로 해적들을 이용해 신대륙에서 금은보화를 싣고 돌아오는 스페인 선단을 공격하는 방법이었 다.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들에게 해적 행위를 허가하는 이른바 '사략 허 가증 Privateer's License'을 발부했다. 적국의 상선을 공격하여 해적질할 권한 을 부여한 것이다. 사략 허가증이 있는 해적들은 스페인군에게 잡혀도 전 쟁포로로 대우받았다.
해적들의 활약 : 영국 역사학
당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적은 존 호킨스와 그의 사촌 형제인 프랜시 스 드레이크였다. 해적들 사이에서 명성을 떨치던 두 사람은 훗날 해군 총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존 호킨스는 최초의 흑인 노예무역상으로 역사적 오명을 남겼지만 막강한 스페인 무적함대에 최초로 도전장을 던진 인물이 기도 했다. 1562년 존 호킨스는 해적 깃발을 날리며 서아프리카에 닻을 내 렸다. 그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흑인 300여 명을 사로잡아 스페인의 식 민지였던 카리브 해로 끌고 가 노예로 팔았다. 그리고 노예를 팔아 번 돈으로 특산품을 사다 영국으로 가져왔다. 첫 번째 노예무역으로 그는 영국에 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되었다. 야심만만한 존 호킨스는 1564년에 또다시 지난번과 똑같은 항로로 노예무역에 나섰다. 그리고 두 번째 노예 무역으로 그는 단숨에 영국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도 그의장사수완에 감탄하며 호킨스 선단의 주식을 살 정도였다.
1567년에 존 호킨스는 또다시 세 번째 항해에 나섰다. 이번에는 엘리자 베스 1세가 내준 700톤급 군함 '지저스 오브루벡과 작은 선박 3척을 포함 한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출항했다. 훗날 스페인 인들이 '바다의 악마'로 여 기던 대해적 드레이크도 처음으로 선단에 참여했다. 이때만 해도 드레이크 는 대해적의 면모를 과시하지 않았다. 단지 작은 군함을 지휘하는 임무를 맡았을 뿐이었다. 항해는 순조로운 편이었다. 그들은 서아프리카 해안에 서 흑인 노예들을 포획한 뒤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던 서인도 제도로 향했 다. 그러나 해상에서 폭풍우를 만난 존 호킨스의 선단은 멕시코 산후안 항 에 정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호킨스 선단은 뜻밖에도 스페인 군함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스페인군은 영국 군함 지저스 오브 루벡과 이익금을 몽땅 약탈해 갔다. 막대한 손해를 입은 존 호킨스와 드레이크는 간신히 배 두 척만 이끌고 도망쳤다. 그 후 2년에 걸친 표류 생활 끝에 1569년이 돼서 야 두 사람은 남루한 몰골로 겨우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으로 영국 귀족들과 정치가들은 분노를 터뜨리며 스페인과의 전 쟁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영국은 처음부터 스페인을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전쟁 자금도 넉넉하지 않았고, 해군력도 약했으며, 보유한 군함 숫자도 턱없이 작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끝내 전쟁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폭풍우로 영국 항구에 긴급대피 했던 스페인 선박에 실려 있는 금괴 를 강제로 빼앗았다. 이를 계기로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는 서로 뺏고 빼앗 기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사략 허가증을 연달아 발행하며 스페인의 해상 교통로를 게릴라 전법으로 공격했다. 스페인 선박에 대 한 공식적인 약탈 행위를 인정하고 그 이익금의 일부를 왕실에 헌납하도록 명령했다. 존 호킨스와 드레이크도 스페인 인의 피로 복수를 맹세했다. 두 사람은 대담한 기습으로 스페인 선단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해적의 지존
엘리자베스 여왕은 존 호킨스를 해군 사령관에 임명하고 강력한 해군 건 설 작업에 돌입했다. 드레이크는 경험이 풍부한 뱃사람을 모집했다. 1572 년에 드레이크는 호킨스가 내준 군함 두 척과 선원 73명을 이끌고 카리브 해안을 급습했다. 스페인 선단을 약탈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스페인은 신 대륙에서 약탈한 금은보화를 배에 싣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 본토로 실어 날랐다. 드레이크는 항구와 인근 해상에서 여러 날 동안 이들 선단을 감시하며 호시탐탐 공격할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스페 인군이 물샐틈없이 방비하고 있어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드레이크는 과감하게 육지로 상륙하여 스페인군을 기습 공격하여 5만 파운드에 달하는 금은보화를 빼앗았다. 1577년 겨울에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서 스페 인 국왕의 영토에서 약탈해도 된다는 승낙을 받았다. 그는 골든하인드 등 군함 5척을 이끌고 신대륙으 로 향했다. 그러나 해적들의 기습 공격에 골머리 를 앓던 스페인은 신대륙의 대서양 연안 지역 을 물샐 틈 없이 방비하고 있었다. 이 때문 에 드레이크는 스페인군의 금은보화를 약탈하기는커녕 오히려 스페인 군함의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이 전투로 군함 14척이 침몰하자 드레이크는 겨우 하나 남은 골든 하인드를 이끌고 도망쳤다. 이때 모든 항로가 막혀 도망갈 길이 없자 드레이크는 과감한 모험을 시 •도했다. 당시 아무도 통과할 수 없다고 여겼던 마젤란 해협으로 들어선 것 이다. 그는 결국 마젤란 해협을 건너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신대륙의 서 해안에 상륙했다. 드레이크가 이러한 모험을 감행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신대륙 서해안 쪽을 방비하지 않고 있던 스페인군은 허를 찔리고 말았다. 드레이크는 태평양 연안을 활보하며 스페인 선박을 공격 하여 엄청난 재물을 빼앗았다. 특히나 스페인의 보물선이었던 카카푸에 고호를 공격하여 막대한 양의 보석과 은을 약탈했다. 이때 그가 획득한 재물은 150만 파운드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영국 왕실의 3년치 수입과 맞먹는 재물이었다. 그야말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존급의 해적질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580년 9월 26일에 드레이크는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배를 끌고 영국의 군항 플리머스로 무사히 귀환했다. 당시 항구에는 해적 영웅의 귀환을 환 영하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친히 골든 하이든 호로 올라가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고 더불어 플리머스 시 시장으 로 임명했다. 드레이크는 그가 탈취한 재물의 3분의 1을 여왕에게 바쳤다. 이때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가 가져온 에메랄드를 자신의 왕관에 박 아 넣었다. 이는 드레이크의 해적질이 단순히 개인 차원의 해적 활동이 아 니라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스페인의 제해권을 빼앗기 위해 벌인 상 전쟁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드레이크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영국 함대는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한눈에 보는 세계사
1602년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설립
1618년: 독일, 30년 전쟁 발발
1627년 : 조선, 정묘호란 발발
1636년 : 조선, 병자호란 발발
1701년: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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